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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시험(정책)

'한국의 영어평가학 4: 사회문화편' 시작글

시작글

ACTFL 한국위원장을 2006년쯤인가 맡으면서 나는 OPIc 말하기시험의 국내 시행을 준비했는데 아마도 같은 해에 시작한 국가영어(말하기/쓰기)인증시험의 기획 업무로도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어느 쪽 일이든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의 인력과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몇 년 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일이지만 즐거운 추억이 많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드나들며 말하기와 쓰기시험에 관한 국가의 개입, 전문성의 확보를 부지런히 설득했는데 시험을 시장의 자율적(?) 욕망에 맡겨서는 평가지식/권한을 결코 민주적으로 위임할 수 없다는 신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기획과 시행안이 국가로부터 본격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한 2007년 여름, 그곳에 작정하고 모여든 이해당사자들로부터 국가가 만드는 고부담'토종‘시험의 권력, 영어시험이라는 상품/자본적 가치, 그리고 개인의 욕망이 넘치는 사회정치학으로서의 영어-시험을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때까지 열악하나마 국내 여러 시험개발/시행 현장에서 축적한 언어평가자로서의 경험은 내 스스로에게 큰 자랑이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런 곳에서 내 이름을 걸고 일한 이유 때문에 국가시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기괴한 충고를 들었다. 물론 그 전부터 학교나 기업, 혹은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출가를 직감하고 있었지만, 열의를 갖고 만든 시험안의 초기 의도 그리고 유의미성이 곧바로 탈색될 것을 직감하고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심을 내렸다.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질서 밖으로 걸어 나와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큰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초대를 받지 못해도, 내가 좀 더 알고 싶고 독립적으로 연구해볼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자유롭게 일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름을 드러내지 말고 무던하게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일을 하라던 주위 충고를 듣지 않았고, 배짱 있게 국가인증시험의 개발 현장부터 떠났고, 그 이후에도 1인 독립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곳에선 계속 내 이름을 지워나갔다. 당시만 해도 영어평가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던 나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큰 프로젝트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기에 위계적 질서, 혹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홀로 걸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던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문 하나를 열고 나오면 새로운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던 헬렌 켈러의 말처럼 그동안 나는 그저 혼자서 책을 읽고 습작하며 새로운 문을 계속 지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40도 되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만큼 나는 공공의 지식인, 전문가, 학자, 연구자의 정체성을 진심으로 흠모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기득권 안에서 내 이름을 한 칸 올려 놓고 떼로 몰려다니며 거수기 역할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속한 학문 분야의 교수님들은 참 바쁘다. 교과서도 만들고 시험도 만들고 영어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고 학회 활동에서도 부산하다. 그런데 영어로 또 교육으로 세상이 너무나 어수선한데 공적으로는 글을 잘 쓰지 않고 세상적인 풍조를 비판하거나 대안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엄숙하고 남 얘기 같은 논제, 가치중립적인 연구방안이 학술지에 등장한다. 난 그분들의 일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가르쳐야 한다. 누군가는 만들어야 한다. 무정부적인 구호로 우린 살 수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성장과 성취의 산업화 시대였으니 영어를 가르치는 학자 집단 역시 대안과 도전을 두고 고민하기 힘들었다. 예전엔 시험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엉성한 모양이었으니 교수님들의 헌신으로 그나마 지금의 표준과 시스템이 만들어진 셈이다. 나도 신임교수 시절에는 그분들과 꼭 같은 일을 했다. 수능 출제도 들어가고, 검정 교과서도 만들고, 학회에서 시키는 일도 모두 했다.

그러나 나는 그분들보다 이제 조금 더 앞서가고 싶고 용기를 더 내고 싶다. 내 학문 분야와 그 연계 영역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내 다양한 경험과 실험적인 지식을 거듭내고 싶다. 영어시험의 개발과 시행은 돈, 네트웍, 국가를 포함한 크고 작은 조직의 정치적 이해관계, 혹은 외풍에서 언제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교수 신분의 1인 연구자는 시험개발의 방향과 의미에 관해서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쉽게 왜곡한다. 돈이 된다면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동종시험만을 재생산하는 일을 선호하기도 하고, 어느 현장에서나 관계에 연연할 뿐, 신념과 철학을 지키는 연구자는 사라진다. 어쩌면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면서 이런 저런 세상 욕심에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현실 밀착적이고 공적 지식인이 되자는 비전은 아예 삭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연구들은 이와 같은 맥락 안에서, 내가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만든 것이다. 시험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이란 것, 그리고 시험을 만들고 시행하는 의도와 그 영향력과 결과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내 경험을 나는 글로 옮겨보고 싶었다. 이 책의 연구들이 내게 귀할 수밖에 없다.

한 때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시장마저도 반응하고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도 생태적이고 유기체적이라 그렇게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는 걸 현장에서 한참 일을 해본 후에 깨달았다. 예를 들어, 영어교육기업에 직접 자문을 할 때와 달리 비영리교육단체인 ACTFL의 한국위원장으로 일할 때 나는 대담하게도 시험의 시행사와 건강한 긴장감을 가지며 동역자의 마음으로 일하면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교육문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그 때 계획한 것이 스토리텔링 문화였고 영어시험을 준비하는 문화 자체에 영향력을 주고 싶었는데, 사실 그러한 사회적 기업의 전례도 없었고, 영어시험을 보유한 기업이 상장사가 되면 한가롭게 연구를 포함한 비영리적 탐험에 돈을 곧잘 쓸 수도 없는 것인데 어찌 보면 난 참 순진한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한국의 영어평가학 4‘는 영어시험의 정치사회학을 소개한 셈인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정치적으로 매우 미숙해서 마당을 깔고 새 일은 곧잘 실행하지만 좌판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언제나 자리에서 물러났던 것 같다. 그리곤 내가 희망과 대안으로 품었던 자리는 구태의연함과 상품의 논리로 꽉 채워진다. 그 모든 실패와 갈등이 사실 이 책의 연구물에 묻어 있다. 속상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런 경험을, 그런 지식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나 말고 누가 있을까 싶다. 감사하게도 나는 내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는 축복을 지난 몇 년 동안 누린 셈이다.

독립적인 1인 연구자는 찔러보기, 편 나누기, 나눠먹기, 소문내기, 시기하고 깎아내리기에 거리를 둘수록 평안을 유지할 수 있고 그나마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보다 귀한 곳에서 덤덤히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더욱 많은 후배 연구자들이 연구자로서 독립을 선언할 것을 격려하고 또 권면한다. 국내에서 영어라는 말과 글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분야엔 수많은 이유 때문에 사회적 관행과 인적 위계가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한참은 더 그럴 수 있다. 그 판에서 평생 조심스럽게 눈치만 보며 자신의 지적 언어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것인지, 아니면 경험하고 배운 것을 작은 텃밭에서라도 당당하게 자신만의 글로 옮기는 독립적인 학자가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알아가는 것과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지도 못하면서 우린 어떻게 교육적 성장을 꿈꿀 수 있는가?

어떤 기관과 권위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독립적인 아카데미아로 회귀한다는 것은 매우 멋지고 흥분되는 일이다. 불편하던 유목적, 주변적 정체성에 건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만의 글을 찾아가는 학자들과 더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우정을 쌓고 싶다. 개미를 연구해서 박사가 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이제는 생태계와 지구동공체를 설파할 수 있는 것처럼 영어시험의 경험적 담론을 기반으로 언어와 교육공동체에 관한, 삶과 앎에 관한, 보다 비판적이고 본질적인 사유를 시작할 수 있는 학인은 어디에 있을까?

시험을 만들고 시행하는 각론의 현장에서는 물러났지만 나는 수년 동안 강의와 파일럿 연구로 실증적 자료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언어평가의 사회정치학 단면에 대한 다양한 책을 준비하고 싶다. 철학, 역사,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 뿐 아니라 교육, 사회, 심리, 정치, 문화 등에 관해서 (비)학술자료를 지금까지 계속 수집하고 읽고 있다. 정리할 자료가 너무 많아서 당분간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쉬면서 이 분야에서만 집중하고 싶다. 앞으로도 경제주의, 기술지배주의, 실증주의, 표준화/경쟁의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영어(학습)의 테크놀로지화, 학습자/수험자의 개체화/객체화, 시장논리와 국가주의에 포획된 언어(시험)정책의 오용과 횡포에 대한 지식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질 계획이다.

비판과 실용의 담론을 새롭게 생산하기 위해 자유주의, 개인주의, 비판이론,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세계화, 실용주의 이론 등의 사회문화이론도 부분적으로 조합하여 수용할 계획이다. 나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다른 사람의 일이나 진전에 긴장감이나 질투심을 가질 위계 구조 안에도 없다보면 외압이나 소문에도 흔들 일이 없을 것이다. 그저 내게 숙제처럼 맡겨진 앎의 깊이/치밀함에 집중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길 소망한다.

책의 원고는 지난 몇 년 동안 연구한 학술자료를 다시 보기 편하게 편집한 것이다. 학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실적물도 되지 못할 책을 또 내는 이유는 우선 내가 걷는 행보를 책으로 다짐하는 버릇도 있지만 이러한 단행본이 언어-평가 영역의 여러 경계선에 있는 많은 분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고 요청되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로 가끔 격려해주시고 제 글을 참조해주시고 읽어주시는 보이지 않는 독자 그리고 관련 영역의 연구자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책에 담긴 연구 중 일부는 공동연구자와 함께 기획하고 수행된 것임을 밝혀둔다. 나는 다양한 연구관심을 갖고 있고 그 일을 진지하게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내 일만 할 수는 없는 (내 지도학생의 표현에 따르면) 생계형 교수인지라 대학원생들을 종종 연구 프로젝트에 초대한다. 지금까지 영어영문과에서만 13년을 근무했고 1년에 고작 한 명 정도 지도학생이 생기곤 해서 항상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가르칠 동료나 학생이 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학생을 붙들고 가르치고 다그치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언제나 성장했다. 정성을 다해 소모임 세미나와 일대일 강독을 통해 그들을 가르쳤고 연구의 기획과 실제 연구의 수행과정을 지도하면서 예비연구자로 훈련시켰다. 그들도 내가 고맙겠지만 내 입장에서도 내가 감당하기 번거로운 데이터 수집과 관리를 예비연구자들이 종종 맡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논문으로 학회지에 게재할 때 나는 예외 없이 그들을 공동저자로 초대하는데 본 단행본의 일부는 그들과 함께 준비한 연구물들이다. 김종국, 김주연, 김나희, 송지현, 심우진, 박진아, 강석주, 임관혁, 박윤규, 박성원 모두 중앙대에서 만나고 함께 공부한 응용언어학 전공 대학원생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유학을 떠났거나 학위과정을 마친 후 멀리 떠나 있지만 그동안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참 행복하고 눈물겹다.

대학은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성을 허락해야 한다고 난 믿는다.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고 진단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믿는다. 특히 응용 분야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이처럼 한국 사회에 실천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감당하면 좋겠다. ‘영어’가 들어간 학과의 구성원을 보면 지위 지향성이 유독 넘치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를 하고 학인이 되는 동기가 신분의 보상, 지위의 획득과 유지에 있는데, 학교 안에서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까지 정치권력 지향성을 갖고 있는 분이 많다. 물론 그런 분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지식으로 권력을 구걸하고 권력으로 지식을 매수하는 폴리페서의 악순환을 매우 경계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는가? 그것은 스토리텔링, 복지, 생태, 인권, 정체성, 다중언어/다문화, 세계라는 공동체, 그리고 정책의 시대이다. 지식인이 새 문화의 토대를 구축하며 구태의연한 관행을 뒤흔들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영어영문과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세상에서 요구하는 기능적 지식꾼으로 살아간다. 단순한 대립으로 구성된 환원적 지식, 가치중립적 지식으로 무장한 영어영문과 학생들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면 정말 영어에 관한 ‘더 나은’ 세상은 요원하다. 그런 상황 때문인지 나는 영어실력, 실무능력만 탁월할 뿐 비판적 지성을 갖지 못하고 벌써부터 사회적 위계질서에 꼼짝도 못하고 눈치껏 살아가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참 부담스럽다. 차라리 실력은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가고자 하는 탈식민적 예비지식인과의 만남이 더 좋다. 우리가 속한 학문 분과 안에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풀어갈 언어가 이미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속한 학문의 교육연구 영역은 너무나 획일적이고 한편으로는 가진 것 없이 교만해서 때로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내가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소수의 학생들은 지금의 시대풍조에 빛의 역할을 감당해주면 좋겠다. 명문 프로그램에서 졸업을 못해도, 영어발음이 좋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삶과 각자가 지닌 내러티브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쟁이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준 여러 학회와 한국문화사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어수룩한 논제가 넘쳐 다시 보면 얼굴이 화끈대는 학술 원고였지만 그걸 항상 여러 학회지에서 실어주었다. 편집위원님들의 관용이 없었다면 난 아무런 진척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영어평가학’ 시리즈를 허락해주실 뿐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졸고를 늘 출판물로 실어주시는 한국문화사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국문화사가 없으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렇게 빠르게 축적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매일 드는 생각이지만 난 참 가난하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난 참 행복하다.

흑석동 연구실에서,

저자 신동일

신동일. (2012). '한국의 영어평가학 4: 사회문화편' 서울: 한국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