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인가 국내 공항과 항공기내에서 발생한 라면상무, 신문지회장 사건이 수면에 가라 앉았다. 다 지난 사건이지만 다시 한번 상황을 복기해본다. 내 눈엔 항공사 직원들이 참 친절하다. 그런데 좁은 기내에서나 또는 공항에서 그들을 막 대하는 사람이 왜 자꾸 등장할까? 어쩌면 그들의 경직된 언어문화가 막말을 허락하는 위계질서를 고착시키는 것은 아닌가?


2. 2012년 가을에 국내 항공사 여승무원들이 과도한 용모와 복장 규제 때문에 불편을 호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련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었고 승무원이 겪는 감정 및 미학적 노동의 부담감이 다뤄졌다. 그러나 토론회를 소개한 인터넷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이 가관이었다.


3. 예쁜 제복 입고 단정한 얼굴로 웃음을 파는게 원래 서비스 직업이며 여승무원들은 절대 불평하면 안 된다는 비아냥이 가득했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한국의 성평등 순위(전체 135개국 중에서 108)가 과장이 아닌 듯했다. 흥미롭게도 바로 수개월 후 다른 국내 항공사에서 그 유명한 라면상무 사건이 터졌다. 컵라면 다시 끓여 오라고 시키다 결국 잡지 뭉치로 승무뤈을 가격한 사건


4. 승무원은 승객이 내려친 잡지로 얼굴을 맞았다. 그걸 들은 네티즌들은 승무원을 옹호했고 자신의 일처럼 비분강개했다. 분노는 당시 승무원을 혼낸 대기업 상무의 개인 품성에 집중되었지만 언어의 테크놀로지화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획일적인 용모와 복장, 친절과 순종의 표준적인 말투를 비싼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상업주의 현상을 더욱 주목했다.


5. 기업이 커지고 표준적인 관리체제가 중요해질수록 고객을 만나야 하는 직원의 언어는 스타일링에 비중을 둔다. 복장과 용모에 관한 규제만큼이나 전달의 내용도 매뉴얼로 통제되곤 한다. , 커뮤니케이션의 맥도날드화 현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승무원의 용모, 복장, 말투를 포함한 모든 의사소통 행위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예쁘고 친절한 언어노동도 상품이고 스타일링으로 잘 포장된 말투도 상품이다


6. 말의 내용과 요령은 하나의 매뉴얼처럼 사전에 작성되는데 프랜차이즈 요식업이나 콜센터의 직원이 아니더라도 왠만한 규모의 직장을 다닌다면 누구나 규범적인 언어교육을 받곤 한다. 학교의 언어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교과서와 시험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언어는 철저하게 위생화 공정을 거친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의 문장을 암기하며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EBS 교재로 수능 듣기시험을 준비하며, 일년에 200만명이 넘게 토익 시험을 보고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너무나 깨끗하게 세탁된 언어가 우리가 사용하고 배우는 언어의 모양이고 능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7. 말을 매뉴얼로 교정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소비자로 군림하지 못한다. 나도 어디선가, 누구로부터 내 말투의 매뉴얼을 학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표준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돈이 전부이고 말이 돈이 되는 세상에선 나와 너의 언어는 규범과 표준에 맞춰진 상품적 가치로 전환시켜야 한다. 적정교육, 적정언어의 사회적 논의는 전혀 없고 언어와 교육의 거대한 공학적 발상만 넘치게 된다. 마치 온라인 게임세계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게임중독자처럼 진짜 언어를 사용하는 나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지 혼란스럽다


8. 어쩌면 짜릿한 진짜 언어를 경험한 소수의 자유주의자들만이 언어의 콜센터에서 도망쳐 은밀한 지하세계로 모여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건 메타포가 아닐 수 있다. 하루 종일 통제된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학생과 직장인은 몰래 어디선가 밤에 만나 생태적 언어를 사용하는 곳이 진짜로 있을 듯하다.


9. 항공사 직원은 참 친절하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말이 우리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앞으로 받을 수모가 우리 모두가 겪을 위생화된 언어문화의 사회적 비용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jacob12